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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 |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며칠 전 외교 일선에서 잠시 쉬고 있는 한 외교관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었다. 통상기능을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한다는 인수위의 결정에 반대하고 대외교섭권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당시 당선인의 반박 한 방에 날아가버린 외교부의 현실이 메뉴였다. 통상교섭의 전문성 차원에서 통상기능을 경제부처로 이관한다면, 과연 외교부가 갖는 전문성이란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설령 검찰이 부패하고 군이 무능해도 그 기능을 떼내어 다른 조직에 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외교부만이 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기능은 있는가.



세계화는 외교부에 축복인 동시에 시련이다. 국민들이 바깥세계와의 접촉면을 넓히고 더 큰 영향을 받게 되면서 정부의 대외업무는 급속도로 팽창해왔다. 따라서 대외업무 주무부서인 외교부의 역할도 증대됐다. 반면, 정부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전권을 가지고 국익을 지키기 위해 주요 국제문제의 정책수립, 협상, 실행을 담당하던 전통적 외교 시대는 지나갔다. 외교는 국가이익 추구에 기초를 두고 있어서 일반인의 경험과 판단 영역을 넘는 전문적 영역이란 인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세계화의 파고를 타고 넘는 모든 이들은 국가의 매개 없이도 직접 해외의 상대방과 접촉하고 교류하게 됐다. 외교의 대상이 상대국 외교관을 넘어서 그 국가의 국민은 물론 지구적 시민사회와 국제기구, 다국적기업 등으로 확장되어 외교활동의 다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외교관의 특권적 지위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외교부 직원들이 서울 세종로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외교업무 역시 안보와 통상 등 전통적 이슈영역으로부터 환경, 문화, 인권, 기술, 금융 등이 중요한 영역으로 부각함에 따라 정부 내 다양한 부처들이 국제업무에 나서게 되는 추세이다. 외교부 이외 정부부처와 민간이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시대가 온 것이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에서 외교부의 멘붕은 정부 내에서 힘이 없어서라든지 하는 차원이 아니라 보다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세상의 변화로부터 오는 것이다. 따라서 외교부가 회생하려면 21세기 새로운 외교환경에 걸맞은 역할을 정의하고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 외교부는 타 부처가 넘볼 수 없는 자산을 갖고 있다. 바로 재외공관이고 거기서 나오는 지식네트워크이다. 어떤 영역이든 상대국에 대한 정보수집과 이슈식별, 해석능력은 독보적이다. 외교부 회생의 출발점은 고유의 영역을 확보하는 게 아니라 고유의 능력을 새롭게 활용하는 데 있다.



논란이 된 통상정책도 외교부의 역할은 분명하다. FTA를 둘러싼 국제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22일 미·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미·일동맹의 강화를 위해 미국이 끈질기게 요청해 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참가를 선언했다. 그동안 미국은 예외 없는 관세철폐를 기조로 하는 21세기형 고품질 FTA로 TPP를 규정하면서 일본의 참가를 종용해 왔고, 일본은 높은 수준의 자유화에 대한 국내 반대 때문에 참가를 주저해왔다. 예상과 달리 이번 회담에서 미국은 관세철폐에 예외를 허용할 수 있다고 양보했고 일본은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왜 이런 합의를 보았으며 향후 전망은 어떠한지, 주변국의 의도와 전략을 정확히 읽어내지 않으면 경제부흥은 어렵다. 외교부는 여타 경제부처가 대체할 수 없는 이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외교는 경제부처, 공공외교는 문화부, 안보외교는 국방부 등과 공유하게 돼있다. 외교부가 혼자 노를 저어가려 하면 배는 움직이지 않는다. 타 부처와 민간 이해당사자들이 외교의 바다에서 함께 노를 저을 수 있도록 외교부는 개방과 공유의 시스템을 모색해야 한다. 국제정세에 관해 축적된 지식과 재외공관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국익을 대변하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역량을 결집하는 지식의 중개자,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협상의 방향타를 쥐는 대외교섭의 컨트롤타워가 그것이다. 외교부 멘붕의 치유는 시대에 맞는 외교개념을 정립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신정부 외교 수장의 노력에 달려 있다.

Posted by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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